내 나이 스물 살이던가
빗소리를 들으면 슬프면서도 아늑한 것이 있었습니다
잎새들의 작은 흔들림에도
삶의 고난과 생의 연민을 알았습니다
사랑을 하면 진실을 보는 눈이 트이고 
스스로 순결과 그리움을 알게 되듯이 
하늘 아래 낮은 사람이 되어
낮게 흐르는 사람들의 눈물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장사를 하면서 시를 쓴다는 게 힘들텐데...
어이 두 가지 일을 하나
그런 분도 있었지요
흰색과 검은색
곰곰 생각하면 너무 대조되는듯 하지만
생과 사는 하나일 뿐
몸과 영혼이 양면이듯
아픔 속에서 기쁨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시란 인간 이전에 굴레나 위선일 수도 있습니다
손에 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시가 보이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는 내 영혼의 얼굴이니까요
영혼이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또 우리들 삶의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요

빗소리를 들으면
내 젊은 시절...
그 호숫가 연잎에 떨어지던 빗소리를 기억합니다
경산 어느 산길을 가다가 휘돌아 다가오는 황홀경
붉게 핀 연꽃을 보고
바닥에 누워 온 몸을 던진채 심하게 운 적이 있었습니다
몸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서걱이는 바람과 찬비는 내 얼굴을 때리고
연꽃을 부둥켜안고 황홀에 젖어 진흙바닥에 딩굴 때
온 천지에 불꽃이 터지면서 내 몸을 감았습니다
온 몸을 휘감고 내리치는 빗방울
그 소리에 화답 하듯 엉엉 소리내어 울며 
꽃향기의 붉음에 가슴을 열고 
이승을 넘어가는 내 마음의 굴레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내 젊음의 한 고비에서
생애 처음 신을 만나 생명의 꽃을 보았습니다 
비에 젖어
천지 한 가운데를 유영하며
연꽃과 나,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걱이는 연잎에 바람소리!
그 바람을 타고 내 몸을 적시던
그 때 그 기억의 비가 내립니다
후두둑 똑, 똑...
연잎이 머리를 풀고 몸을 떨면
함초로이 물결치던 개화성
아아,,,
이 밤도 *다르마타 그 황홀 속에
이승을 넘어가는 내 육신의 본향을 봄니다

*다르마타; 죽음 직 후 저승으로 떠나는 과정에서 본성의 빛에 쌓여
천지간에 흐르는 아주 짧은 순간을 가르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