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오래 전에 나를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세상을 붙잡고 걸어간다.
두 발로 당당히 걷는다고 생각하고 걷는다.
넘어지지않을려고
세상의 옷자락을 한 손으로 잡고 걷는 나!
이따금 돌아본다.
세상의 이 편에서 만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닮은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얼룩을 털어낸다.

혼자 있을 땐
이따금 창공을 나는 새가 된다.
어둠에서 어둠을 건너가는,
절벽과 협곡을 넘어가는,
단절의 시대를 바라보며
짐승의 눈이 되어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서 서성이는
짐승의 눈을 갖고 세상을 본다해도
세상은 아니,
사람이 걸어온 길은 더욱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천둥이 친다.
지상의 모든 어둠을 들어내며
우렁캉 우렁컹컹
번쩍! 번개가 지나고 천둥이 친다.
천둥! 슬픈 울음이다.

하늘이 갈라지는 파편같은 폭음(爆音)!
지하에도
깊은 동굴이 있고
무수한 짐승의 울음이 잠들어 있다.
양각된 그림자의 울음.
내 꿈은 이내 시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