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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유 국진
ㆍ작성일 2020-09-29 (화) 03:35
ㆍ추천: 0  ㆍ조회: 352      
ㆍIP: 49.xxx.58
사모곡(312)


어머니
잘 지내셨는지요?
저희는 지난 주에 이사를 하였습니다
집이 새 집이라 강진이가 신이 나서 이쁜 그림들을 벽에 걸고
화장실이 딸린 큰 방은 강진 쓰라고 주고 저는 중간 방으로 어머니 침대를 옮기고
때 묻은 책상과 책장을 이쁘게 가지런히 놓아서 공부할 수 있게 방을 꾸몄습니다
부엌도 이쁘고 거실에는 옛날 어머니랑 살 때 쓰던 테이블도 놓고
20층이라 창문을 열면 앞산이 시원하게 들어오고
신작로에 차들이 눈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데 마치 바람소리에 휘는 단풍나무 같습니다
밤의 야경을 더욱 그러합니다

이사를 했으니 빨리 어머니께 소식을 전해야한다는 마음이 앞서 오늘은 일찍 자고 이제 일어나니 밤 두시라 고요한 시간에 어머니께 글을 드리니 제 마음이 무척 평안합니다
막내는 잘 있고
조카들도 모두 강건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귀연이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강진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얼굴이 스마일이고 직장에 가서 힘든 일을 해도 즐거운가 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가족들이 사랑과 평강을 축적하는 작은 집 한 채 허용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 중심지에서 멀어도 좋고
부유한 사람들은 조금 더 큰 평수에서 살아도 좋고
행복의 꽃이 마음에 얼굴에 피어나 이 사회가 풍요롭고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여유롭게 살면서 책도 읽고 그림도 감상하며 진실과 성실의 밀알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토피아를 꿈꾸어 봅니다

장인 어른은 암이 온몸에 전이가 되어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병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식사도 전혀 하시지 못하니까 내일쯤에 타계하시지 않을까? 그렇게 알림이 왔습니다
올해 연세가 구순이시니 장수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82세에 귀천하셨으니 8년을 더 사신 셈이지요
자녀들이 모두 그럭저럭 잘 된 편이라 크게 유언도 없었다고 하고 둘째 딸 진주에게 장인 어른이 모두어 둔 현금을 전부 증여해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부모나 못사는 자식이 제일 아픈 손가락인 것 같습니다
빚도 많고 남편이 불성실한 편이라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미국 온지 40년이 넘었건만 사업이든 자식들이든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아버지 입장에서는 제일 가슴 아픈 손가락이었지요
크게 악한 짓도 하지 않았고 천명을 누렸으니 하늘나라에서도 좋은 곳에서 영면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 오기 전에 찾아 뵙고 마즈막 인사를 하러 갔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 왜 이제 왔는가 하시며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하였습니다
다 지난 일이니 저도 마음에 아픈 것을 털고 이해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돌에 맞았지만 지금은 아픈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고 통증을 잊어 먹었기에 편안하게 대해주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어머니
요즘은 제가 많이 우울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건지 시작업도 게을러지고 사업도 개점휴업이라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어제는 카나다에 있는 찰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기를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이치로 참고 견디자고 격려의 글이 왔습니다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그 마음이 무척 따뜻하여 어제 동동주 한 잔 마시고 일찍 잤었지요
게다가 볼리비아에 있는 홍 선생한테서 이메일이 왔는데
조금 더 볼리비아 생활을 하다가 나이도 있고 해서 한국에 나와서 여생을 보낼까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나온다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작통닭구이를 하는데 소스가 무척 맛이 있습니다
게다가 맛을 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서 아들 둘에게 맛을 제대로 아르켜주면 크게 성공하겠지요
저는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지미 가족들이 먹어보고 맛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홍 선생이 오면 외로운 생활에 저는 많이 의지가 되겠지요
바둑도 곧잘 두고 나이도 동갑이라 정서나 궤적이 서로 비슷합니다
게다가 사람이 염치가 있고 예의가 발라서 아주 겸손하여 서로 의지가 됩니다
전에 바둑을 두면서 나랑 한국에서 같이 살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고 고백을 하더군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는 분이니까 제가 자세히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저는 마음도 많이 아프지만 몸도 자주 지치고 기운이 없어 자주 눕는 편입니다
하도 김 영철이가 침황환이 좋다고 해서 오다해서 먹어보았는데 기운이 나기는 커녕 별로 저하고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인지 예전과 똑 같습니다
아마 그렇게 말하면 몇 달 더 먹어보세요 하고 광고여자가 설레발을 칠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뭅니다
어머니랑 살던 볼리비아 집도 팔려고 부동산에 내 놓았습니다
코로나로 모두들 어렵고 힘든 시기인데 50년 된 전통의 식당들이나 기업체가 부도가 나고 실직자가 대량으로 거리에 쏟아지는데 집이 쉽게 팔릴 것 같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쉽게 팔리면 빚도 좀 갚고 다비 장가도 보내고 하고 싶은데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지요
어머니께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께서 좀 사람이 된 여자분을 하나 강진에게 보내주세요
재혼해서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도 마음을 놓고 고향 땅에 작은 집을 하나 지어서 한국 오면 그곳에 가서 머물게요
폐가 나빠서 공기가 조금 좋은 바닷가에서 살면 좋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 하셨으니까 그러고 싶은데 강진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렇습니다
내가 와서 한 보름쯤 밥을 제대로 해서 먹이면 얼굴에 꽃이 핍니다
음식 할 줄 모르니 라면이나 먹고 싸구려 음식을 사먹고 지내는 꼴을 보기가 심히 힘듭니다
게다가 대구라는 곳은 서울과 너무 달라서 거의 시골이라고 봐야 합니다
인품을 얻는다는 것은 정제된 광물을 얻는 것과 같지요
저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하겠지요

모레면 추석입니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고등어도 굽고 쑥개떡은 미리 준비해 두었고
대추랑 밤도 햇 것으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나물만 맛나게 준비하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안심 조금 사서 굽고
할머니 좋아하시는 물가자미 사서 준비하고 차례를 지낼까 합니다
조선민족의 큰 명절이니 어머니
아버지와 손 잡고 오셔서 제가 한 맛난 음식을 꼭 향수하시고 가시기 바람니다
그리고 민족이동이 끝난 다음 주에 어머니께 갈 것입니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마음이 설레입니다
벌써 어머니 소찬하신지 12년이 되었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저도 이승을 떠나고 나면 누가 있어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 수 있을련지
딸 넷은 자기들 살기가 바빠 어머니께 관심도 없고 강진은 나무만 보고 살아왔기에 숲을 보지 못하니 제가 그에게 무슨 부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답은 잘 합니다
이런 저런 일로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이 자꾸 우울해 지고 주위에 나이 드신 분들은 자꾸 돌아가시고  부고가 오니 제가 아는 시인도 이제 한 사람 남았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셔요
슬픈 이야기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한국에 오면 내 곁을 떠난 친구들 동무들 친척들 생각을 하다보면 자꾸 외로워지고 마음이 우울해 집니다  
어머니 무척 보고 싶네요
다음 주면 어머니 뵐 수 있어서 저는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질려고 합니다
편히 계십시오
늘 기도하는 제 마음을 알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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