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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274)
어머니 지난 주 피검사를 했는데 엊그제 결과가 나왔습니다 콜레스토롤치가 상당히 높아서 의사선생님이 특별히 약을 주셨고 그 것도 하루에 두 알을 먹으라고 했는데 또 나쁜 콜레스토롤이 높으면 혈관에 중성지방이 높아져서 혈전이 쌓이게 되고 동맥경화가 오고 고혈압이 오고 부정맥이 오고 심지어는 내장지방이 쌓여서 당뇨병이 오게된다는 그런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콜레스토롤치가 아주 좋아지고 당뇨수치도 많이 낮아지고 작년보다 많이 건강해졌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아주 기뻐하시는데 저도 기뻣습니다 약도 약이지만 이번 한국가서 봄나물을 많이 먹은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머위랑 두릅이랑 쑥도 많이 먹구요 달래간장에 홍합밥을 해서 슥슥 비벼먹기도 했구요 포항 가서 보리숭어를 회를 뜨서 물회를 몇 번 먹은 게 좋아진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보경사에 가서 부지깽이 나물과 취나물을 많이 먹고 사오기도 하고 봄 고사라와 봄 부추가 싱그러워서 맛나게 먹은 것이 피를 맑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전골을 좋아하는 저는 미나리를 넣어서 맛나게 먹었구요 더덕도 산에 다니면서 열심히 먹었습니다 술은 이따금 막걸리를 일주일에 한 잔 정도 했습니다 밥은 흰강낭콩을 퀴노아쌀에 섞어서 꾸준히 먹었습니다 죽순요리도 이따금씩 먹구요 특히 강진이 보고 당귀를 구해오라고 해서 홍갓과 민들레와 상추로 쌈해서 먹었습니다 의사선생님께는 이런 음식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자기 약이 좋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월악산엘 가면 더덕구이 정식을 파는데 먹을만 합니다 특히 능이버섯요리도 팔고 영지버섯도 파는데 저는 영지를 사서 갖고와서 집에서 대추, 감초, 오미자, 우엉 볼리비아에서 갖고온 그라비올라 몇 잎 넣고 푹 끓여서 마시는데 향이 좋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쑥설기가 나옵니다 곤드레밥도 나오구요 간에 좋다는 곤달비떡도 나옵니다 콩가루에 묻혀서 맛 나다고 아들이 먹으면서 좋아라 웃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런 걸 보면 모든 게 어머니 즐겨 드시던 음식입니다 어이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 울릉도에서 나오는 눈개승마 그리고 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 고기맛이 난다고 육개장을 끓여서 먹던 옛날, 이야기들 한 그릇 먹고 마시면 몸이 거뜬하지요 저는 이번 봄에 어머니 해 주시던 꼬시래기도 무쳐서 먹어 보았고 쑥버무리도 먹어 보았습니다 곱창김은 지인이 선물해서 아들집에 주었더니 시우랑 시진이가 좋아라하며 잘 먹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미국서 태어나서 한국음식을 먹지 않고 미국음식을 먹으면 조손간에 동질감도 없어지고 한국인의 기상도 사라지니 저는 늘 그것이 걱정입니다 건강해졌다고 100년을 살수는 없지만 또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아프지 않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가까운 형제 함께 의리를 나눈 벗들 그리고 사랑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 했던 그리운 사람들 다 사라지고 나 혼자 백살을 살면 행복할까요? 며느리가 밥을 해주고 이부자리를 준비해 주는 시절이 아닌데 모두 갈 때 저도 적절한 시간에 가는 것이 순리이겠지요 요즘 마켓에 가면 고등어가 무척 신선해 보입니다 고사리를 밑에 깔고 고등어에 양념을 고루 뿌려서 졸임을 해 드시던 어머니 모습 쭈꾸미나 우럭을 졸여서 드시던 어머니 모습 전복 물회를 해 드리면 아이고 배가 부르네 잘 먹었다 하시던 어머니 모습 우리 산천에 계절이 바뀌고 그 계절 속에서 다시 살아서 우리 앞에 얼굴을 보이는 자연 그 자연의 일부를 버무리고 무쳐서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 백 년은 사실줄 알았습니다 저도 이제 늙었는지 어머니 생각이 사무치면 자꾸 눈물이 나고 술을 찾게 됩니다 옛날 충청도 어디를 가다가 청국장을 사드렸었지요 참 그 청국장이 맛이 유별했습니다 너무 맛나게 드시는 모습 돌아오는 길에 그 식당을 다시 찾을려고 갔는데 그 때는 네비가 없어서 다시 찾지를 못하고 그냥 다른 식당에서 어머니께 다른 음식을 드렸는데 조금 드시더니 맛이 별로네 하시며 수저를 놓으셨지요 참 그때 왜 그렇게 후회가 들고 나 자신이 무능해 보였는지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청국장 생각을 하면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 어찌 한 번 간 그 집을 그 다음 날인데 못 찾았을까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꼭 귀신에게 홀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제가 돌아보니 참 잘못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맛난 음식도 어머니랑 함께 들지 못 하면 맛이 없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머님 숟가락에 창란젓, 명란젓, 조개젓 요것조것 올려 드리지 못 하고 긴 겨울밤 함께 티비를 보면서 밤을 깎아 입 속에 넣어 드리지 못하고 삼을 꿀에 절여서 어머니께 드리지 못 하고 갸느린 다리 주무르고 두드리고 안마해 주지 못하고 벌써 십 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세월이 어이 이렇게 빨리 흘러갔나? 그동안 저는 무엇을 먹고 견디어 왔나? 이따금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늘 랙서스공장에 가서 오일체인지를 하는데 메니저로 일 하는 헬랜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지난 주에 남 유럽을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음식도 아주 좋았고 고성(古城)도 좋았고 거리도 좋았고 신앙적은 측면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보고 그길 가보라고 추천해 주시더군요 10박 11일인데 저는 그래 오랫동안 서양음식을 먹지 못해서 가지 못합니다고 했더니 한국음식도 네 번 나오고 일식도 나오고 중식도 나오는데 괜찮아요 합니다 그래요? 하고 내가 놀라서 다시 물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한국의 위상이 무척 좋아졌구나 유럽에도 한국식당들이 있구나 그리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 살아계셨다면 동유럽도 가고 스페인도 가고 중국의 장가계도 모시고 가고 만리장성도 모시고 가고 어머니 사시던 교토에 모시고 가서 유년시절의 추억도 되새겨 드리고 그랬다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행복해 하셨을까요? 반중 조홍감이 무척 고와도 보입니다 내 어찌 일찍 박인로의 눈물을 몰랐을까요? 인상사 슬픈 부운(浮雲)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어머니 떠나시고부터 참 외롭고 허전하네요 세상 그 누구가 있어서 제게 배가 아프면 녹두죽을 끓여주고 머리가 아프면 대구지리를 해 주시고 제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시고 서 석제선생님의 십 폭 송화도 이야기를 해 주시고 큰 사람이 되어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있는지요? 오십 년 육십 년 함께 동고동락한 벗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내게 달겨들고 약속을 본인이 어겨놓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내게 달겨들어 내 얼굴에 침을 뱉었던 사람 돌아보니 참 슬프고 마음 아프고 괴롭습니다 돈이 뭔지... 빚을 지고 죽어서는 아니된다 하루에도 수 십 번 가슴에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어머니 제게 조금만 힘을 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이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면 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은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그리 되지 않을까요?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 숙이며 하루를 맞고 하루를 보냅니다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고 기쁘하지 않고 의를 행하지 못함을 아파하는 저는 정말 이 시대에 제일 못난 사내일까요? 바울이가 그러더군요 "아빠 제발 좀 가만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미국이 싫어서 하루라도 빨리 한국가서 아버지 주신 나비산에 작은 전원주택 하나 지어서 은둔하고 싶습니다 봄나물이 미국에는 없습니다 봄나물이 없으니 여름나물도 없겠지요 허구헌 날 대파, 연근, 우엉, 시금치, 두부, 콩나물, 숙주나물 이런 것만 있습니다 제 눈에 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맥주 한 병을 갖고와서 따는데 가요무대에 비내리는 고모령이 나옵니다 현인의 잘 생긴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께서 현인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하셨지요 고복수, 남인수, 현인, 최무룡, 신상옥, 김희갑, 조미령, 최은희 이제 모두 흘러간 사람들 입니다 작년에 영덕이 고향인 미남배우 신 성일씨가 타계했습니다 저는 멀지않아 고향에 돌아가서 귀거래사를 쓸 생각입니다 맹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은 큰 사람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시련을 주어 그 사람을 단련시키는 법이라고 모세가 그러했고 한신이 그러했고 백범이 그러했습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마치 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잘 이겨내겠습니다 저는 영원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죽으면 죽을 것입니다 여자인 에스더가 한 일을 남자인 내가 못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머니 작년에 고향엘 갔더니 고향 동창생이 나를 보더니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하는데 시를 쓰는 너는 너무 싫다고 합디다 시를 쓰는데 왜 싫은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은 것이라도 싫을 수도 있구나 그런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보다 뛰어나면 싫어합니다 해서 교육도 인생도 사랑도 의리도 모두가 평준화입니다 산의 높이가 똑 같다면 계곡의 깊이도 똑 같을 터인데 물은 어디로 흐를까요? 사람마다 태어나면서 틀린 성을 갖고 태어나고 크기도 모습도 색갈도 능력도 지혜도 마음도 모두 틀리게 갖고 태어나는데 수 천 종류의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루고 이른바 회이부동의 세계가 참 조화로운 세상이 아닐련지요 어머니 요즘 시대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경쟁이고 다툼이고 미움과 증오와 시기만 가득찬 세상입니다 사람들에게 백 년 뒤의 일을 이야기 하면 잘못하면 욕을 얻어 먹습니다 바울이가 아빠 가만히 있어요 하는 말 요즘 이해합니다 감옥에만 보내면 적폐가 청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편을 가르고 적폐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선의 부조리가 500년을 흘러왔는데 지금 몇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적폐나 부정이 사라질까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고 세금으로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가는 조선조 말기증상이 이어져 내려온 내 조국 대한민국 왜 이렇게 슬프고 아플까요? 나는 정말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너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중국에 갔더니 중국과 한국이 축구를 하는데 조선족들이 전부 중국 응원을 하더군요 너희는 우리와 동족인데 어이 중국 응원을 하나? 물었더니 한국이 우리에게 해 준게 뭐가 있는데? 그러더군요 인생은 어머니 이런 것 입니다 뭐를 받아야지 좋아하지요 시는 그런 면에서 아무런 댓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엇을 주는 예술입니다 돌을 깎아서 부처를 만들고 그 부처의 미소 속에서 자비로움을 느끼는 거룩한 사랑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없어서는 아니되는 형이상학이지요 그런 것을 노래하는 것이 시입니다 어찌 그 무엇 때문에 제가 곡필아세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연산조에서도 시인이 붓을 꺾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목숨은 짧으나 예술은 길다 그 명제 하나로 모든 예술인들은 주야총력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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