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모곡(281)
어머니 더운 여름 그간 어이지냈셨는지요? 저는 노가리 1분 레인지에 데워서 오랫만에 경주법주를 한 잔 합니다 순창에 고추장 명인 박옥례 할머니가 계시는데 그 보리 고추장을 한 숟갈 접시에 담아 찍어 먹으면서 어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오늘은 소자가 기분이 좀 좋습니다 강진이에게 저녁에 바다장어를 구워주었는데 잘 먹더군요 반은 소금간을 하고 반은 고추장 간을 해서 깻잎에 생강과 마늘을 얹고 둘이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먹었는데 안 재모 사진이 박힌 팔공산 먹걸리를 한 잔 했는데 술이 독한지 제가 술이 약한지 초저녁에 자고 일어나니 밤 11시이었습니다 해서 원고 정돈을 하고 단어공부를 하고 밤 세시가 넘어 자리에 누웠는데 잠은 오지않고 눈만 멀뚱멀뚱하여 어디 먹다 남은 술이 없나하고 부엌을 뒤졌는데 반찬 넣어두는 밑칸 바로 뒤에 개봉 안한 경주법주 한 병이 있어서 아이고 할렐루야하며 멸치를 꺼내고 노가리를 굽고 헤헤...한 잔 중입니다 한 잔 하며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데 마치 어머니 살아계실 때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노가리 안주에 맥주 반 잔 어머니께 올린 그 옛날이 생각이 납니다 "아이고 야야 짜리하다..." 그 목소리 들리는 듯 합니다 어머니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오늘처럼 외로운 밤이면 더군다나 밤비소리가 들리고 추적추적 창가에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것 같으면 외로움이 도드라져 술잔을 기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백처럼 위대한 시인도 아니고 두주불사를 외쳤던 수주 변영로 선생님도 아니지만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소동파 선생님하고는 맞짱 뜰 준비가 언제든지 되었습니다 시를 잘 쓰는 시인이 많고 문장을 잘 쓰는 시인이 많고 잘 생기고 멋지고 아름다운 시인은 많지만 민초를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소동파 할배가 저는 좋습니다 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동파육을 만들었던 그 마음은 먹습니다 퇴계 이황 할배도 내 고향 영덕하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지난 주에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바다도 보고 사람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가슴에 안고 왔습니다 어머니와 비슷한 목소리의 사람들 저는 어머니 시대의 사람들의 몸짓과 목소리 정말 좋습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전어가 키로에 얼마냐고 묻는데 할머니께서 반찬 두개에 설은 밥 한 그릇 드시다가 그릇을 치우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어서 식사 드세요 잠시 있다가 올게요 하고 10분 뒤에 갔더니 아이고 오셨네 하시면서 어제는 2만원이었는데 오늘은 만 오천원이에요 합니다 2킬로만 주세요 했더니 할머니께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가면 오지 않는 세상에서 거자필반을 했으니 할머니께서 기뻐하시며 입가에 미소가 어렸습니다 "할머니 젊었을 때는 무척 미인이었겠어요 아주 곱고 음전해 보이시는데 너무 인상이 좋습니다" "아이고 두 마리 더 넣었습니다..." 전어 8 마리가 일 키로인데 두마리를 더 얻어 왔습니다 바다 가사리에서 사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고래고기 할머니에게 갔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그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꼴복지를 좋아하시던 어머니 여름이라 꼴복지가 없더군요 고래고기 한 움큼 사서 돌아오는 차창에서 어머니 비치듯 한 점 먹었습니다 안다고 낯 익다고 고래고기에 기름치를 더 넣어주시던 할머니 언덕에 서서 고향땅 흙빛을 그려봅니다 사람은 바람과 별빛과 구름과 빗소리에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께서도 할머니가 되셨고 저도 어느 날 시우와 시진이가 할아버지하고 부르더군요 바람과 달을 보고 보배와 바울을 낳고 기르고 구름과 언덕을 넘고 넘기며 한 고비 한 고비 이승의 팔가구맥을 건녔습니다 어머니 짧은 시간의 여로에 내게 그리움만 남기시고 이승을 떠났습니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은 왜 이리 무겁고 허전한지요 고추장 하나에도 전신의 혼을 담아 맛과 멋을 내시던 우리네 할머니 하물며 평생의 땀으로 저를 기르시고 도탑게하시고 정갈케하시며 함초로운 이슬을 머금게 하신 그 사랑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저는 사람이 아니지요 금수도 그런 금수가 없습니다 포식난의도 저는 싫습니다 함포구복도 저는 싫습니다 어머니 가난의 사랑이 저는 좋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