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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282)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소자 오랫만에 문안드립니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저는 그동안 서해바다에 다녀왔습니다 강진이는 여름휴가를 받아서 어머니께 다녀온다고 떠났고 서울가서 누님도 만나보고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왔네요 누님은 지난 달 택사스로 떠난 정재네를 방문한다고 여행준비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아마 추석 전에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생질부가 미국에 연수를 2년간 해야한다고 해서 모든 식구들이 택사스로 가나 봅니다 택사스에 가게 되면 아마 바로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엘에이에 들릴 것 같습니다 보배모에게 행여 엘에이에 들리면 내가 없더라도 잘 해 드리고 맛나는 식사도 준비하고 윗층에 깨끗한 방을 준비하여 누님 내외를 잘 모시라고 이야기 해 두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좁아서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한국의 한 부분 같습니다 실시간 한국방송이 바로 나오니 미국서 생활할 때는 한국이 미국의 일부 같았습니다 어머니 하늘나라도 무척 더웠지요? 어느 시인이 저를 초대하여 신안군을 두루 철환하였습니다 신안군은 섬이 1004개나 있다고 하며 특히 자은도라는 섬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8월이라 무화과가 지천으로 열리고 또 양파의 집산지라고 합니다 저는 저녁식사를 초대 받았는데 농어 맑은 탕을 먹었는데 맛도 맛이러니와 밑반찬이 얼마나 깔끔하고 깨반하게 나오는지 그 정갈함이 참으로 놀랐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참게장이 나왔는데 어머니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 맛이 얼마나 향큼하고 심오하였는지 그 국물을 조금 뜨서 밥알 위에 놓고 살짝 휘젓어서 먹었는데 향이 아직도 목젖에 남아있습니다 농어를 살짝 말려서 지리탕을 했는데 그 깊은 맛이 당나라의 시인 소동파를 불러서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농어가 천하의 진미란 말을 남긴 이가 바로 蘇軾이였으니까요 어머니 살아계셨다면 제가 모시고 가서 따뜻한 그 국물을 한 모금 입안에 넣어드리고 어머님 웃으시는 모습 행복해 하시는 모습 바라보며 즐거워했을 텐데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함이 정말 억울합니다 입추가 지나고 조금씩 낯익은 풀벌레 소리가 귀에 익습니다 어제는 방에 조그마한 여치가 한 마리 들어와서 폴싹하고 뛰며 내 눈가에 뉘를 내며 다녔습니다 크면 잡아서 밖에 내 보내주겠는데 너무 작아서 행여 잡다가 다치면 어떻하나 겁이나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오늘 금봉산엘 다녀왔습니다 너무 높지 않아서 좋았지만 날씨가 더운 관계로 땀이 비오듯 했습니다 대구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이 제 키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많고 많은 집들 중에서 아직도 내 집 하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사람 반이 집이 없다고 하니 있는 사람들이 두 채를 갖기 때문이겠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엔 세상은 힘이 들고 외롭기만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재판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눈을 감고 생각을 합니다 처제는 전화도 안 받고 잠적을 했나 봅니다 내 집에 압류가 들어왔으니 피하기만 하면 해결이 날거라 생각을 하나 보지요 보배모도 이제는 당신 형제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옛말에 새는 궁하면 쪼고 (鳥窮即琢) 사람은 궁하면 거짓된다고 했습니다(人窮即詐) 허지만 저는 다 용서했고 미움도 갖지 않습니다 미워함을 갖기에는 그 사람들이 너무 가련하고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여 빚을 갚고 하나님께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기도하며 간절히 정성을 다하면 좋은 일들이 열릴 것입니다 내 생의 시작도 여호와께서 열어 주셨고 내 생의 마즈막도 그분이 닫아주실 것입니다 그는 알파요 오메가이시니 내 생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행사하실 것입니다 그는 내게 일립만배를 보여 주셨고 어머니의 영혼의 귀의를 보여 주셨고 내 영혼의 평강과 안식도 보여 주셨습니다 하니 제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무슨 미움과 아픔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크기와 본분을 보시기 위해서 욤에게 주신 시험을 제게 보이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욤은 주어진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원망치 않았으니 불행이 오히려 축복이 되었고 저 또한 약간의 불행이 왔다하더라도 하나님이나 처제를 원망치 않을 것이니 심는 것도 여호와시요 거두는 일도 여호와이시라 함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머니 내일 모레 어머니께 갈 것 같습니다 해서 내일은 이발도 하고 사우나도 하고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하여 어머니께 가고 싶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에 어머니께 가서 기도하고 돌아오면 마음이 평안해 지고 무엇인가 새힘이 납니다 친우 홍섭에게도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아시니 그 중심에 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제게 조금만 더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글을 다듬고 고치고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아름답고 좋은 적절한 언어가 쉽게 뜨오르지 않아서 깊은 밤 너무 괴롭습니다 나이가 드니 감각이 둔해지고 새로운 무늬의 언어가 가까워지지 않으니 더욱 힘듭니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고혈압이라 심장도 두근두근합니다 어머니 제게 조금만 더 슬기를 모아 주시고 혜안을 열게해 주십시오 만에 하나 그럴리는 없지만 행여 저의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어질고 선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이웃에 빛이 될 수 있다면... 그럼 저는 얼마나 기쁠까요? 논어에도 천하의 영재를 모아 고금을 읽고 익히는 것이 인생삼락의 하나라고 했으니 저 또한 그런 기쁨을 누렸으면 합니다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불의한 자가 시를 많이 읽었다고 의로운 자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麻中之蓬이란 말이 있으니 그런 경우가 귀하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어머니 밤이 깊어 하루가 바뀌었습니다 풀벌래소리가 가을의 서경을 섬돌 앞에 두고가는 것 같습니다 가을소리가 다감하게 다가오면 어머니께서는 저희에게 칼국수를 해 주셨지요 감자와 호박을 넣고 끓인 칼국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어머니 하얀 손이 어쩜 그렇게 아름다우셨는지요 밤이 깊어갈수록 어머니 그리워하는 마음 죽는 순간까지 어머니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아가겠습니다 오래 참고 양선하며 겸손하며 사람들에게 말 한 마디라도 가볍게 대하지 않으며 진실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 속에서 살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남은 시간도 그렇게 살아 갈 것입니다 설마 이보다 더 나은 부귀를 누린다고한들 절행을 어긋나게 하겠습니까? 어머니와 함께 칼국수를 먹었던 그 행복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용봉탕이니 팔보채니 마우타이니 위스키니 그런 것 별로입니다 신안의 자은도에서 나는 생막걸리 자미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도 맛이 달고 향이 유별하여 농부들의 땀방울의 진체를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 병을 사 갖고왔는데 두 병은 먹고 두 병은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맛이 좋아 아끼고 아끼며 야금야금 마실려고 합니다 사람의 참 행복은 절욕이라 했으니 죽어서도 살아계시는 어머님만 제게 있다면 장부의 한 세상이 일파만파로 흘러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 팽년의 옥출곤강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셔요 곧 어머니를 뵐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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