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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287)
어머니 저는 내일 어머니를 뵈러 파주로 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금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3일 금식을 많이 하였는데 이제 나이도 있고 심장이 나빠서 의사님이 3일 금식은 무리라고 하여서 이틀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물맛이 좋아서 물을 자주 마시니까 정신이 또렷하고 우롱차를 마신다거나 볼리비아 떼 만사닐라를 한 잔 하면 견디기가 좋습니다 재명이가 살아있을 때에는 파주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그 동무랑 잠시 차를 마시고 바득을 한 두 판 둔 뒤 대구로 내려오는 일들이 무척 좋았는데 이제 재명이도 타계하고 그가 머물던 곳도 타인이 들어와서 일을 보겠지요 그 곳을 찾아가서 그의 자취를 연상하는 것도 제겐 무척 힘이 들겠지요 이번에 서울 가면 시인 민영님을 잠시 만나볼까 합니다 정공채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난 뒤에 문단에 많은 분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기에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고 제가 늘 선생님과 다녔던 양평의 양수리 그 고저녁한 마을과 강물괴 불빛 유명산의 경개와 산자수명의 소소함 지난 시간들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저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람은 원래가 선한 존재가 아닌데 그 웃는 모습이 모두 나를 닮아 동질성을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 저의 착오였습니다 어머니 두 발로 세상을 걷는 것도 이리 힘이 드는데 한 발은 들고 한 발로만 깡총거리며 뛰는 앙감질로 세상을 급하게 살면 얼마 못가서 넘어질 것입니다 나에게 도끼눈을 하며 손가락질을 하며 내 등에 칼을 들이댄 동무들이 많았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그 모습들이 나를 더욱 외롭게 합니다 2000년 전 중원을 차지하며 호령했던 항우 생각이 납니다 오강에서 사면초가에 들러 싸여 갈 곳이 없을 때 평생 함께 한 오추마를 베고 사랑했던 우미인을 베고 목숨을 끊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최후가 나를 더욱 처절하게 합니다 이제 멀지않아 나도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 풍운의 역사를 되새겨 봅니다 어머니 형제에게서 받은 상처는 더욱 오래갑니다 바울이가 장가를 갔을 때 피로연에서 며느리랑 테이불을 돌면서 맥주를 따라주고 귀빈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동생들이 앉아있는 테이불은 지나치고 그냥 간 모양입니다 경난이, 성난이가 자기들을 무시했다고 경난이 아틀란타로 떠나기 전날 식사초대에 성난이는 오지도 않고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며 보배애미에게 악담을 했나 봅니다 고모가 되어서 어린 것들의 실수를 이해할 수는 없었을까요? 경난이가 과부인데도 부조를 천불을 했더군요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표값으로 천불을 주었습니다 또 빈 손으로 보내기가 마음 무거워 화장품 전문 백화점에 가서 엘리자베스 알덴, 랑콤, 샤넬등을 천 불어치 사서 성난이랑 똑같이 반을 갈라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난이 딸 영아 결혼식에 3.000불을 부조했습니다 성난이 딸 민정이 결혼식에도 3.000불을 부조했습니다 세월이 무척 빠르군요 어머니 생존해 계셨다면 외손녀들의 결혼식에도 힘 드셨어도 참석하셨을 것이고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기꺼이 그 자리에 있었겠지요 어머니 아니 계시니 두 동생은 타인이 되어 일 년이 지나도 안부 한 번 없고 바울이가 얼마나 잘 되나 두고보며 지내나 봅니다 누님이 내게 한 언어와 행동들이 두 동생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 더욱 마음이 추창해지며 어머니와 생전에 살던 그 때가 무척 그립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릴 때부터 내가 맛나게 먹던 음식도 강진이가 바라보면 먹다가 주었습니다 히야 맛있어? 하고 묻기도 전에 말이지요 삼십 년 전 경난이가 멕시코에 살 때 찾아가서 보니 살림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마이아미로 데려다 놓고 이만 불을 김서방에게 주었습니다 김 서방이 나중에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한국에 돈을 옮겨놓기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잘 살았지만 제가 준 이만 불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10년 전 타계하였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살 때 성난이 남편이 미국비자를 받기 위해 은행잔고증명을 떼야한다고 하루만 넣고 돌려준다는 이만 불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전 그 돈에 대한 말을 단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내가 돈이 급하여 동생들에게 돈 이야기를 하면 오빠 미안해요 돈이 없네요 그 소리 듣는 것이 두렵고 민망하여 저는 입을 다뭅니다 어린 조카가 잘못하여 앙심을 먹고 하나뿐인 오라비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아이들인데 무슨 말을 못할까요? 저는 그런 모든 것들이 두렵고 이기와 편견에 젖은 사람의 모습 자체가 두렵습니다 또 하나 생각이 나는군요 강진이가 30년 전에 안양에 집을 산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200만원을 주었지요 일 년 뒤 삼청동 고모님에게 빌린 돈을 돌려줘야한다고 200만원을 또 빌려갔습니다 30년 전 서초동 신동아 20평형 아파트가 천 칠백 만원을 했을 때입니다 전세 칠백에 융자 사백을 얻어서 조금 보태고 하면 집을 하나 살 돈이었습니다 지금 재건축을 한다며 아파트를 헐고 있더군요 부동산에 가서 물어보니 20억은 간다고 합니다 5년 전 조카 은비가 결혼한다고 이천만원을 빌려갔습니다 그리고 난 뒤 생활이 어려워 천오백만 원을 또 갖고 갔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형님...준비중이니 곧 돌려드리겠습니다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달 전 셀트리온 주식을 7백만 원어치 샀는데 2백만 원을 손해보았다고 하더군요 "무슨 돈이 있었느냐?" "여윳돈이 좀 있었습니다" "줄줄이 빚인데 무슨 여윳돈이 있었단 것이냐? 여윳돈이 있다면 이자 나가는 돈부터 갚고 누나에게 빌린 돈부터 갚고 적금도 들고 하여 목돈을 만들어서 내년에 이사갈 때 준비를 해야하지 않느냐?" 그렇게 훈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강진에게 30년이 흐른 그 긴시간 단 한 번도 내게 빌려간 돈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내게 빌려간 돈이 얼마인지는 말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르더군요 형님이 그냥 준 것 아닙니까? 하길레 내 돈은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느냐?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 다음 다음 날 적금 든 것이 만기가 되었다며 200만원을 갖고 왔더군요 내가 하도 기가 막혀 나는 너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 것이지 돈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하고 돌려주었습니다 처음엔 완강히 아닙니다 형님하며 받지않을려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너에게 지금 이백만 원은 큰돈이 아니냐 한 푼 두 푼 잘 모아서 이자 나가는 은행 빚도 갚고 누님 빚도 갚고 그렇게 하여라" 이런 훈계도 돌아서서 분노하며 두고보자 니가 얼마나 잘되나 이런 씩으로 나올까 겁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말을 통 안하고 지냅니다 동생 둘을 5년 전 잃었는데 남동생 하나마져 잃으면 제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또한 누님을 잃을까봐 무척 겁이 납니다 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무척 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누나가 두고 두고 바을이를 욕하고 하버드를 나오면 뭐하나? 먼저 사람이 되야지 하며 나를 볼 때마다 두 여동생 편에 서서 어린 조카를 비하하고 내게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이럴 때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누나를 나무라고 두 동생을 나무랐겠지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 속에 흙 속에 묻힌 옥이 때가 되면 드러나듯이 진실은 영원히 잠드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번 미국방문에서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바울 집에 가서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손자들을 보고는 아이고 이뻐라 하며 좋은 시간을 가졌나 봅니다 하긴 바울이가 누나에게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세상을 분노로 독선으로 바라보며 누구를 증오하고 징치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지만 누구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해주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어머니 저는 술이 취하면 왜 이리 춥고 외로울까요? 요즈음 제가 무척 어려운 줄 알고 카나다에 있는 중국친구가 오만불을 어제 빌려주었습니다 형제에게도 빌리지 못한 돈을 이방인인 중국사람이 제게 빌려주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당신 같은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을 본 적이 없소이다 하니 내년까지 편하게 도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글이었습니다 그 분이 보낸 영어글을 그대로 옮겨드릴게요 (I've never seen like You who are true and honest in the world OK, 50thousands, I like to help you without any condition until next year) 이런 글을 보내오며 나를 만난 것을 무척 큰 행운이라고 믿는다고 부인도 용기를 내달라는 글을 함께 동봉해 왔습니다 이자는 필요 없고 내년 말까지 여유있게 쓰라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이제 처제가 우리에게 피해를 끼친 돈은 제가 조금더 보태고하면 채권자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쯤 되면 차압을 풀고 다시 은행에 이차융자를 신청하여서 매월 조금씩 갚아나가면 내게 빌려준 귀한 마음의 지기들의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상해에 있는 아우는 오다가 없어 회사유지가 무척 어려운 줄 압니다 그런데도 2년을 미수금을 독촉하지도 않고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여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언젠가 먼 훗날 중국사업을 다 철수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 작은 의지가 되겠습니다 오늘 사람의 일을 내일 알 수가 없는 것이 인생사이니까요 막내처제에게 집사람과 처제랑 동업을 깨는 조건으로 처제가 투자한 십만불을 사 년 전 제가 주었습니다 지금 이 난리에 형제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단 5만불이라도 언니야 반은 돌려드릴게 보태서 작은 언니 부도나서 언니가 너무 어렵다고 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이게 정말 꿈으로 끝날 일일까요? 막내 처제는 어림잡아 자산이 2천만 불이 넘습니다 지금은 아이고 내가 그 때 잘 빠져나왔지 하마터면 나도 피 볼뻔 했네 하며 무척 다행이야 형부가 고맙네 하는지도 모릅니다만 막내처제와 동서는 인격이 고양한 분들이라 어쩌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어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제 목숨의 시간추 속에서 살아온 삶의 작은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지울 수 없는 것들은 품에 안고 저는 묵묵히 갈 것입니다 어머니 돌을 맞으면 아프지만 그 돌이 종을 때리면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겠지요 청동의 종이 되어야지... 아프지만 은은한 소리를 낼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어머니께 가는 그날이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금식 속에서 어머니의 영혼의 뿌리는 더욱 일신하고 일신하여 내 마음을 청결케 하며 어머니의 거룩하신 사랑을 저는 깊이 밤마다 느낍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은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귀한 사랑의 실존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저만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세상 모든 인사의 흔적이 설니홍조요 신기루 같은 가짜인줄을 아셨나봅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나에 대한 평가를 세인들은 하겠지요 꼭 그렇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너가 가장 많이 울게다" 용인에서 식사하시다가 말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하신 말씀 그 말씀이 저에게 주신 마즈막 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타계하셨으니까요. 무척 보고 싶습니다 내 어여쁘신 어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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