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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이 영하 4도라고 하고 대구도 영상 3도라고 합니다 어머니 계시는 파주는 서울보다 북쪽이라 더 춥겠지요 날씨가 추워지면 저는 어머니께서 계시는 곳이 춥지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살아계실 때에도 날씨가 추워지면 추위를 몹시 타시고 추위를 무척 두려워하셨는데 그런 관념이 저의 뇌리 속에 남아있어서 영하로 내려가면 혼자 어머니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초저녁에 자다가 바람이 몹시 불어서 창이 많이 흔들리더군요 일어나서 밖을 보니 어둠이 짙은데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밖은 매우 추운 것 같고 바람소리는 옛날 고향바다의 성난 목소리 같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옛날 강구바다가 생각나고 어머니 고생하시며 손등이 칡의 뿌리처럼 갈라졌던 삼동의 겨울이 생각납니다 제 나이 열 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위에 비바람에 떨던 외로운 밤이있었지요 아버지는 멀리 타관에 계시고 강진이를 갓 낳으시고 힘들어하시던 그 해 오동지 섣달 성격이 강팍하신 할머니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시고 눈물로 밤을 새우시던 모습 내 할머니는 어머니를 사랑의 며느리로 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요 노예의 며느리로 보고 평생을 분노하고 학대하고 증오하시다가 별세하셨습니다 제가 볼리비아로 어머니를 모셔오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요 "애비야 내 평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이 처음이구나" 할머니 무서워 밤의 발자국도 두려워하셨던 어머니 교회를 다니시며 찬송을 하시고 행복해 하시던 모습 목사님이 김집사님하고 불러주실 때마다 황송해 하시며 민망해 하시며 고마워 하셨던 어머니 그 단아하고 결곡하시던 모습 제가 기억을 합니다 어머니 다음 주면 엘에이로 갑니다 한국에 있으면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가서 뵐 수가 있는데 멀리 타국을 떠나야 할 때면 어머니와의 거리가 멀어지니 제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 나는 언제쯤이면 조국으로 돌아와서 어머니 곁을 지킬 것인가? 그런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지난 주에는 지인 이 원상님의 모친이 별세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저희가 용인 살 때 한 번 저의 집을 방문한 것 기억하시지요 어머니를 뵙는다고 케이크를 하나 사서 갖고왔었지요 예의가 무척 바르고 단정한 분입니다 게다가 어머니 장례식 때 분당 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답례로 제가 보령의 빈소를 방문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향년 90세라고 하였습니다 영정사진을 보니 아주 후덕하시고 인자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5년 만에 보는 이 원상님은 많이 나이가 들어보였고 키도 조금 작아보였습니다 아마 어머니를 잃고 마음 아파 더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마음은 제가 너무 잘 알기에 연민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훗날 상해에 있는 아우가 한국에 돌아올 때쯤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자고 했습니다 어머니 볼리비아는 혼란상태입니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방화하고 약탈하고 채소값이 6배나 튀고 라파스와 코차밤바는 휘발유가 없어서 차들이 다니지 못한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가게문도 열지 못하고 학교도 문을 열지 못하고 파업이 연장되어 무정부상태라고 합니다 다행이 산타크루스는 문은 열기는 하지만 거리에 사람도 없고 오는 이 가는 이 없어 모든 상거래가 정지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빨리 볼리비아로 제가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저의 물건도 코차밤바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길목을 코카에로들이 막았다고 합니다 저의 창고에 빨리 들어와야지 걱정을 덜고 년말장사를 할 텐데 공중에 떠 있으니 참 걱정입니다 홍콩도 지금 파업이다 데모다하여 가게마다 전부 문을 닫고 거리엔 최루탄이 가득하여 눈을 뜨지 못하고 무정부상태라고 합니다 동서양 어디에고 편안할 곳이 없으니 그나마 데모를 하고 행진을 해도 한국은 공장이 돌고 가게를 열고 하면서 데모를 하니 참 다행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골에서 살면 그런 것 다 잊고 편안하게 여생 보내면서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하고 골프도 하고 도방보다는 시골이 나이들어 살기엔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오늘 밤은 잠이 오지가 않네요 바람소리가 저를 깨웠나 봅니다 새벽 5시이니 배가 출출하고 따끈한 우동이나 라면 생각이 납니다 부추김치나 총각김치에 알싸한 신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죠니워카 불랙 한잔 쪽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볼리비아에 살 때에 어머니께서 오셔서 '야야 속 버린다 그 독한 술을' 하시면서 혀를 차시다가 북어국이나 미역국을 끓여다 주시고 걱정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 저는 안주도 없고 해서 조니워카에 김을 안주해서 먹고 있습니다 작년에 바울이 장인이 미국 갔다오면서 제게 선물한 술입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 배가 자주 고프지만 전에는 배가 고프면 '엄마 나 배고파'하면 '아이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벌떡 일어나시던 모습 요즘은 배가 고파도 저는 잘 참습니다 나가서 뭣을 먹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라 대충 집에 있는 김치나 나물 몇가지로 배를 채웁니다 안주로 아몬드나 호두 땅콩 그런 걸로 배를 채우기도 하구요 김치 넣고 국수를 삶아서 자주 먹기도 합니다 어머니 저는 밤을 새우면서 글을 치는 버릇이 거의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건강도 많이 상했고 누구를 만나는 일도 별로 없고 50년 된 벗들도 모두 내 곁을 떠나고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이 무섭고 그렇습니다 유태인 겅전인 탈무드에 가난할 때의 벗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더군요 어부 장씨는 내 평생의 부랄동무였습니다 40년 전 그가 결혼 했을 때 그 부인이 제게 자기 소개 편지를 볼리비아에 보내올 정도였습니다 그가 스물 정도의 나이에 가난했을 때 그의 모친은 70세였고 제가 어머니하면서 그 집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했습니다 축산의 모든 동네분들은 내가 그 분의 자식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 동무와 진주로 놀려갔다가 그 동무의 집에 밤 9시에 도착하여 현관에 들어서는데 "여기가 하숙집이가? "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제게 하는 소리인줄을 몰랐었지요 "나보고 하는 소리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 동무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못들은 척 하더군요 그길로 대구로 돌아와서 지난 5년 전부터 인연을 끊었습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온돌 황토침대를 사주고 몸이 야위기에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봉투를 주고 관절에 뼈에 피에 좋다는 약은 미국서 날라다가 주었습니다 장의 부인은 제가 갖어다주는 모든 것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줄 알고 먹었습니다 왜냐면 단 한 번도 감사하다든지 고맙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30년을 저는 그렇게 사랑하며 그 동무를 끔찍이 아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 짐을 맡기고 방세를 달라고 해서 2백만원을 주었습니다 의리로 맺어지는 인간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 준 것이 그들이 원하는 선에 늘 미달했는가 봅니다 한 번은 밥을 먹다가 장의 부인이 "드라마 보면 친구에게 쓰라고 일 억씩 주는 것을 못보았어요?" 하고 묻더군요 내가 물끄러미 그 분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관계 끊어라" 하신 말씀 듣지 않고 너무 오래 왕래하다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친구 황선생은 50년 지기였습니다 대학시절 가난할 때 만났지요 그 분이 교직생활 35년을 하고 은퇴했을 때 제가 시계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오래 기억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참 사람은 생각이 서로 많이 다른가 봅니다 어느 친구가 시계 근사하네 그러더군요 황 선생은 내 앞에서 이 시계 가짜입니다 그러더군요 그리고 엘에이 와서 많이 울고 괴로워하다가 그 친구와도 인연을 끊었습니다 보배애미가 그런 벗은 인연을 끊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 세상이 어찌 무섭지 않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단 한 번 자기들은 진실되고 거짓되지 않으며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유 국진이는 그들이 사는 인생에서 조금 필요했고 그 필요를 충족해주지 않아서 자기들 스스로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며 내게 무례를 범한 것이지요 하니 죄의식이나 고마움이나 그리움이나 질책이나 미안함이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은 아닌지요? 때린 놈이 당당하니 맞은 놈이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 세상 그래서 저는 사람이 너무 무섭고 세상이 너무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밤이 새도록 어머니와 이야기 하고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두려움도 힘듬도 없는 좋은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어머니 외로운 저를 불쌍히 생각하시고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영혼이나마 행복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하늘나라에서 생활하시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무파마를 넣고 라면을 하나 끓였습니다 위스키를 마시다보니 속이 너무 쓰리고 아팠습니다 애호박도 썰어서 넣고 풋고추도 넣고 통영굴도 몇 개 넣었습니다 마즈막에 계란도 하나 넣고 부추김치에 안주 삼아 국물을 마시며 글을 칩니다 맛이 걸쭉해지고 매포한 국물 한 숟가락 목젖에 넘기니 속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살짝 익은 계란 흰자를 조금 뜯어 먹으면서 고소하고 미끈한 맛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머니 얼큰한 라면국물 이 매운 국물맛이 부드러운 면발과 함께 한국인의 사랑을 포획한 것 같습니다 라면 한 입 먹고 위스키 한 잔 하며 글을 치니 참 좋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또 길러주시고 사랑해주시며 평생을 함께한 어머니의 거룩한 은혜 이 한 밤 라면 한 그릇에도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하며 하얗게 밤을 새웁니다 저는 조금씩 침잠하며 그 사랑의 향기를 가슴에 담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셔요 엘에이 도착하면 어머니께 다시 들리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볼리비아가 안정이 되게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께 매달려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지극히 사랑해주시면 물극즉반이 오고 비극태래가 오지않을까요? 物極則反이란 달도 차면 기운다는 뜻이고 否極泰來란 음지가 양지가 된다는 그런 뜻도 있겠지요 비란 꽉막힌 상태이니 그것이 극에 달하면 태의 상태 태평의 뚫린 상태가 온다는 뜻이겠지요 주역을 공부하면 건곤의 상태가 평정을 유지할 때가 가장 좋은 평강의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제가 참고 견디어야하는 자강불식의 시대요 더욱 덕을 쌓아서 후덕재물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地勢坤의 때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 편안히 안녕히 계십시오 악의 때가 극에 달하면 멸망의 길로 들어갈 때이고 선의 때가 끝에 도달하면 영광의 평강이 올 때임을 제가 법구경을 읽어서 압니다 이 아들이 천하의 금력과 권세는 얻지 못하여도 천하의 덕과 진리는 알고 간직할 것입니다 일찌기 맹자가 말했습니다 참 행복은 절욕에 있는 것이라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어찌 받은 것에만 있겠습니까? 피한 것에 더 많은 감사할 일들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온 은혜에 감사할 일이요 어둠을 피하고 비정의 인간들의 덫에 피하고 소인의 간계와 배덕을 피하고 간악한 감바리들과 갈가위들의 흉계를 피하며 살아온 일들 절욕의 마음과 소박의 마음으로 세상 유혹과 달콤함을 피하여 살아온 날들 흉사에 참척에 마주치지 않은 일들에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습니다 어머니 다시 만나는 날은 제가 조금은 평안하고 기뻐하며 밝은 모습으로 어머님을 뵈었으면 합니다 부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곡히 기도하며 어머님의 영혼의 평안을 위하여 이 밤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세상에 어미를 잃고 슬피우는 아들의 목소리 그 간절함이 제 마음 속 깊이 저를 허물어지게 하는 밤입니다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 처절한 외로움이 나를 더욱 아프게하는 밤입니다. 어머니 무척...보고싶네요 너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 겨울에 칼국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드렸으면... 서산에 가서 바지락칼국수를 맛나게 드시고 돌어오던 그날이 무척 생각이 납니다 이 원상님도 그렇게 어머니께 작은 것이나마 칼국수의 추억이 있겠지요 그 분의 고향이 서산이고 만고의 성웅 이 순신의 고향도 서산이니 서산 서천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의 영예가 더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삼가 지면을 통하여 고인의 명복을 다시 빌어보는 밤입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소자 다시 어머니를 뵈려 올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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