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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유 국진
ㆍ작성일 2020-05-11 (월)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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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IP: 116.xxx.82
사모곡(302)

어머니
오랫만에 어머니께 들렀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이제 날씨가 제법 더워졌습니다
저는 며칠 전 선풍기를 꺼내어 틀고 밤에는 창문을 다 열고 잠을 청하며 런닝에 반바지만 입고 덥다 덥다 하며 지냅니다
그끄제는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요즘은 아버지들도 섭섭하다고 하여 어버이날이라고 하지만 저희가 클 때에는 아버지 날이란 것은 없었지요
왜냐면 허구헌 날 술 먹고 집에 와서 어머니를 폭행하고 소리 지르고 막걸리 안 사준다고 기물을 부수고 평생 돈 한 푼 벌어다 주지 않으면서 가장이라고 소리 꽥꽥 지르는 아버지상을 보고 자란 저희 세대에는 아버지 날은 없었지요
요즘은 착한 아버지가 많아서 어버이 날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좀 염치가 없습니다
왜냐면 자식들에게 잘 해 준 것이 별로 없고 애비 노릇도 제대로 못하여서 늘 미안한 마음이지요
미국은 파더스데이가 따로 있는데 그날은 보배나 다비가 선물한다고 "아빠 뭐가 필요해?" 하고 물으면 절대 선물 하지말라고 제가 사정을 합니다
뭐 잘난 애비라고 선물까지 받는지요
제 생일에도 아이들에게 절대 선물 못하게 합니다
힘들게 벌어서 좋은 데 쓰야지 못난 애비에게 선물이 가당키나 한지요
저는 자식들에게도 뭐를 받으면 부담이 되고 제가 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 선물 못하게 합니다

어머니
며칠 전에 문득 20년 전에 제가 알던 김 길선 장로님 생각이 났습니다
20년 전에 장로님이 연세가 75세 정도였으니 지금 살아계신다면 구십오세 되었겠군요
20년 전에 그 장로님을 어이 알게 되었느냐고 하면 아우 상주가 12월에 도착하는 콘테이나에 교민들과 교회식구들과 나누어서 먹으라고 라면이랑 고추장이랑 순창의 집된장을 보내주었지요
제가 연세가 60 세 이상된 교포분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전화가 왔었어요
김 장로님이 라파스에서 산타크루스로 이사를 왔는데 부인이 작년에 돌아가셔서 혼자 사시는데 생활이 많이 곤궁하다고 하더군요
해서 연락을 하여 장로님을 저희 사무실에 오시게 해서 라면을 한 상자 드렸습니다
그 다음 해에도 명단에 이름이 올려진 분들에게 운전수를 시켜서 라면을 한 상자씩 드리고 순복음 교회 식구들에게는 라면은 물론 고추장, 된장을 한 병씩 보내드렸어요
김 장로님은 제일교회를 다니시는데 제가 혼자 사시는 것을 알고 고추장을 보내 드리고
그 다음 해에는 된장도 보내드리고 삼 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상해 아우님이 착하기도 하지요
제가 그렇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해마다 년말 물건 도착하는 시기를 헤아려서 무상으로 라면이랑 고추장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돈을 주고 사서 연로하신 교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줄로 알지만 실상은 상해 아우님이 보내주는 것으로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한 삼 년 세월이 흘렀나? 어느 날 장로님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저희 가게로 들어오시더니
"유 사장 잠간 나와보세요"
"네 무슨 일인지요?" 하고 따라서 밖으로 나갔더니 30키로 무게의 쌀포대가 하나 입구에 있더군요
"콜로니아 오키나와에서 햅쌀이 나왔다고 해서 오늘 가서 한 자루 들고 왔다오"
'네에?"
'라면에 고추장에 염치가 있어야지 이 늙은이의 정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아이고 장로님 이러시면 안되요 저는 장로님이 제 아버님과 연세가 비슷하고 어르신이라 당연히 하는 것인데 어이 이 무거운 것을 300키로나 떨어진 오끼나와에 가서 버스로..."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너무 놀라서 제 눈에 눈물이 고였었지요
집에 와서 그 쌀로 밥을 해 먹으면서 목이 잠겨서 가슴이 무척 황홀했습니다

어머니
그런 일이 제 생애에 있었습니다
오 년을 저는 아우가 보내주는 라면이랑 고추장이랑 된장을 교회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교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단 한 분도 제게 전화나 대면으로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 한 번 한 사람이 없었지만 김 길선 장로님은 생계가 전혀 없는 빈 몸이신데 그 무거운 것을 저를 생각하여 갖고 왔다는 것이 저는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겠지요
얼굴이 넙데데하고 온천하시고 너그러워 보이시는 웃음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 하며 일찍 아버지를 여윈 저에게는 정말 따사한 부정을 느끼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골프장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몇 몇 모여서 소리 지르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 국진이가 어떤 놈이야?
"원단 장사하는 그런 놈이 있다네"
" 그 새끼 죽여버리겠어 누군 라면 주고 누군 라면 안주고 그래?
" 손을 좀 봐야 해"
내가 옆에 있어도 내가  누구인줄 모르니까 거침 없이 욕을 하고 그러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이 먼 대척점의 볼리비아에서 라면 한 상자로 상처 받는 분들이 있구나
한국마켓이 없어서 라면 한 봉지 구해서 먹기 어려운 분들이 생각나서 한 짓인데
나이 든 분들 생각만 했지 어렵게 살아가는 이민 초기의 힘든 분들 생각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와서 아우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라면이고 고추장이고 된장이고 보내지 말라고 글을 보냈습니다
안 주고 욕을 먹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사랑을 해서 돌을 얻어 맞는 것보다 사랑을 하지 않고 모른 척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김 길선 장로님을 생각하면 내 생각이 잘못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분은 자기가 먹을 양식도 부족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일화가 생각납니다
"과부의 한 데나리온은 이 여자의 전 재산이니라..."
어버이 날 문득 김 장로님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많이 외로워하시고 마음 아파했을 것입니다
이따금 볼리비아에 갔을 때 찾아 뵐 걸 요즘 무척 후회가 됩니다

어머니
세월이 참 무섭습니다
이렇게 깊고도 깊은 사연을 싣고 어디로 흘러 가는지요?
수십 억 명의 사람들마다 인연이 있고 사연이 있고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는 이 무게를 모두 싣고 도데체 어디로 흘러가는지요?
그 세월 속에 저는 어머니를 잃고
라면 한 상자에 사람을 향한 그 사랑을 잃고
그 사랑의 젖은 목소리를 이제도 기억하며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이렇게 흘러 온 저는 너무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 가는 넓은 문으로 가지 않고 좁은 문으로 가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저의 순정!
이제 와서 돌아보니 너무 낡고 야비한 저의 모습!
어머니의 아들로 서기엔 저는 정말 참괴한 무슨 말뚝 같습니다
아니 이름 번지러러한 삭정이 같습니다
해서 저는 아버지 날이라고 자녀들에게 선물 받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힘듭니다
다비가 3년 전에 향수를 한 병 선물했습니다
무척 아껴 쓰고 아껴 씁니다 아직도 반 병이나 남아 있습니다
향수를 뿌릴 때마다 다비를 생각하며 요놈은 나를 많이도 닮았어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아
그러면서 아들 효심에 좋아라 합니다
어미니
어머니께서도 비싼데 이런 걸 뭐하러 샀노? 하시면서 역정을 내셨지만 저 없을 땐 동동 구루무 얼굴에 바르시며 거울 보시며 내 아들이 사준 건데..하시며 행복해 하셨지요
때로는 제가 어거지를 쓰면 "아이고 중치 막혀..."하시던 모습
그래도 영덕 가서 길커리들 만나면 "액씨야 나는 아들이 좋다카이 두드려 맞아도 아들이 좋다카이..."
하시며 눈웃음 지으시던 어머니 모습
엊그제 어머니 날 어머니께 가고 싶었지만 이 번 주 목요일 갈려고 며칠 미루었습니다
강진이가 목요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그렇게 미루었습니다
한 아들 보시는 것보다 두 아들 보시는 것이 어머니께서 더 행복해 하실 것 같아서였습니다
어머니
강천산 막걸리가 맛이 참 희얀하게 제 입에 딱 맞습니다
문어 몇 조각 썰어서 후추소금에 찍어 먹으며 글을 치니 마치 어머니께서 옆에 계시는 것 같군요
요즘 영탁이랑 임영웅이랑 이찬원이랑 추롯 가수들이 인기가 절정입니다
영탁은 고향이 안동이고 이찬원은 대구이고 김희재는 울산이라고 하더군요
경상도 사람들이 노래를 참 잘해요
쌀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인데...
노랫말만큼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나는 먹지 못해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 나는 무척 행복할 수 있어 그런 세월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런 세월이 저의 앞에 올 수 있을까요?
김 장로님의 쌀 한 자루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오월의 햇살이었습니다
제 가슴에 시들지 않는 돋을볕이 새록새록 돋아 났으면 아니 댕갈댕갈 돋아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
이제 곧 어머니께 갈 것입니다
월말엔 미국으로 가야하고 한국에 온지도 벌써 육개월이 다되어갑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쑥지니까 미국 가서 아이들도 보고 손자들도 보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도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요즘 무척 외롭고 갈 곳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고 많이 힘들게 지냅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무섭기만 해서 누굴 만날 생각을 못합니다
제가 무척 약해졌는지 날이 갈수록 두려움이 많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셔요
불효자 진이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척 슬픕니다
제가 부족하여 어머니를 일찍 여윈 것 같아서 죽고만 싶습니다
이 불효를 어이하면 사면 받을 수 있는지요
어제는 강진에게 맛나는 초밥을 해 주었습니다
와사비를 적당히 바르고 자연 산 광어와 연어를 빚어서 맛나게 해주었습니다
쌀은 아주 좋은 햅쌀로 꼬들하게 밥을 지었더니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고소한 맛이 입에 진동했습니다
오늘은 땡차리 그러니까 강성돔 찜을 해서 주었습니다    
오십천 뺑차리가 강성돔이었습니다
제가 자아오면 간장에 졸여 주시며 어서 먹어라 맛나게 하시던 모습  
강진에게 어머니 남기신 말을 해 주었더니 강진도 엄니 생각이 나는지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
빈몸

한 세월 가면 가는 거고
한 세월 오면
오는 거지

내게 피할 수 있는 재능이 없거늘
그 무게 감당키나 한가?

그 세월에 감사해야지
받은 것 부족하여 감사할 일이 없어도
나는 좋아

피할 수 있는 세월이 있어서
이따금 나는 좋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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