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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421)
어머니 저희 마파트 담벼락에 쩔쭉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처음에는 붉은 색으로 피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하얀 색으로 가득 피었습니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철쭉의 손사래는 쉴 새가 없었고 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개나리가 지고 진달래가 지고 목련과 매화가 질 때쯤에 어김없이 다가오는 철죽꽃은 화사함과 풍요로움이 봄의 서장을 오케스트라의 화려함으로 장식하는 듯합니다 철쭉을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납니다 목련이 지고나면 어머니 떠난 뒤의 허탈감이 물밀 듯이 밀려 왔는데 다행이 철쭉이 뒤를 이어주니 저는 봄의 기슭에서 마치 어머니께 위안을 얻는 듯 기쁨니다 어머니 꽃이 피는 지상에의 봄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위안을 약속하는 듯합니다 특히 병들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눈물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저처럼 이별이 아파 눈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뭔가 바람이 생기고 기대가 생기고 또 낯익은 기다림이 동개동개 쌓이기도 합니다 내게는 앙가발이 처럼 뒤뚱뒤뚱 천천히 다가오고 낯 선 사람을 보듯 데면데면 다가오고 내 앞에 와사는 익살스럼게 활짝 마음을 열고 따사함이 빛의 여울이 되어 송이송이가 천진난만합니다 그러다보니 꽃을 보면 볼 때마다 어머니 모습이 나를 덮칩니다 어제는 호수공원엘 갔습니다 잔잔이 이는 물결을 타고 오리 두마리가 헤엄치며 나란히 물줄기를 낳습니다 매화꽃잎이 호수 위에 떨어져 마치 눈송이처럼 쌓이다 녹습니다 생은 설니홍조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리움만 남습니다 어머니 이달 말 엘에이로 갈려고 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 보름 정도 약을 더 먹고 더 휴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다음 주에나 뵈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이 듭니다 조카 주연이가 딸을 낳았는데 이번 주에는 서울 가서 조카손녀 손을 잡고 기도해 주고 싶습니다 주연이가 무척 좋아하겠지요 외삼촌 외삼촌 하며 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조카인데 아픈 몸 무릅쓰고 방문하면 좋아하겠지요 어머니 생존해 계시면 같이 가셔서 축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향 강구에도 같이 가고 봄바다도 같이 보고 싱싱한 해산물도 먹고 어머니 좋아하시던 물회도 먹고 어머니 떠나시고 난 뒤에는 제가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이 없어졌습니다 이따금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 모든 것도 언젠가는 나의 뇌리에서 모두 사라지겠지요 어제 시장에 가서 쑥을 샀습니다 할머니들이 들에 다니면서 쑥을 엄청 캤나봅니다 길거리에 쑥을 벌여놓고 파는데 한 무더기 큰 것은 만 원 작은 것은 오천 원이더군요 된장을 조금 풀고 쑥국을 해서 저녁에 먹었습니다 쑥 향이 좋아서 어머니 생전에 쑥 드시던 모습 상상하며 먹었습니다 게다가 쑥은 항암제이며 혈관에도 좋아서 저는 먹으면 든든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떡집엘 가도 쑥개떡이 지천입니다 한 팩에 오천 원인데 향도 좋고 먹고 나면 요기도 되고 봄을 먹는 것 같기도 합니다 먹으면서 어머니 입에 하나 넣어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쓸쓸히 사념을 멈춥니다 어머니 밤마다 저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편안히 계세요 다음 주에는 꼭 들릴 거에요 청하 한 잔 띄우고 어머니 따뜻한 사랑 가슴에 담고 다녀올 것입니다 제가 너무 못나고 너무 미약하여 어머니께 더 잘 하지 못하여 무척 죄스럽습니다 더 잘 해 드리고 싶은데...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은데... 늘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겠지요 자연의 순환이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물극즉반의 시계인 것 같습니다 회지정리의 이치도 이와 같은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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