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월의 나그네 -
  구월에는
늘 떠나던 그 길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소서!
여름의 찬란한 잉태가 숨을 고르고
그 가지가 푸름의 절정을 가를 때
뒤돌아보았던 그 길을
홀로 비어 있게 하고서

내가 선 이 땅에서
거룩한 전설이 사방에서 막히고 
천년 세월의 무게가
내 작은 가슴에 멍울처럼 밀려오기에
구월에는,
뒤돌아서서 옷깃을 여미고
슬픈 사바의 눈물
내 손으로 닦게하소서

의로서 꽃을 피우고
그 꽃의 열매를 꿈꾸어왔던 젊은 사자들! 
이승에서 모두 허무로 사라지고
있어도 없다, 있어도 없다,
존재와 무의 의미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월에는 
우리들의 하얀 사랑
찢긴 그림자 곱게 적시게 하소서.

구월에는
꿈을 나누고 꿈을 지니는 생의 의미를
회상의 무게를
무의 바다를 떠도는
은백의 나그네를 기억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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