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에 물을 주면서 누렇게 떠가는 콩잎을 본다 가지와 잎 줄기와 뿌리 눈빛이 멈출 때마다 문득 칠보시가 생각난다 한
발을 내디디면서 내일은 태양이 서쪽에서 뜨리라 그렇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내 목숨을 줄 수
있다고 또 한 발을 디디면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콩잎을 갉아먹는 콩벌레들 이익 앞에서는 의리를 생각하라던 내가 사랑하는
콧수염의 젊은 사내를 생각해 본다 콩밭에 물을 주면서 턱턱 갈라진 흙덩이를 본다 이 시대의 사랑이나 은혜를 보는 듯 위정자들의
갈퀴 같은 손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얼굴을 옆으로 젖히고 알고도 모르는 척 허옇게 웃는 그들의 입술 입술보다 더 두꺼운 갈색
심장이 어른거린다 콩잎 모양 짓누렇게 뜬 흙쟁이들의 육골 굽은 등뼈엔 송진내가 나고 눈엔 진물이 흘러 뿌연 안개 속을
헤매듯 초점을 잃었다 펴진 자는 한없이 죽죽 펴지고 굽은 자는 끝없이 구부러지는 세상 이 콩밭에 내일이면 태양이 서쪽에서
뜨리라 핏빛 목숨 열이라도 주리라 물을 주면서 울음소리 환청으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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