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밭에 물주며 -
 

콩밭에 물을 주면서 누렇게 떠가는 콩잎을 본다
가지와 잎
줄기와 뿌리
눈빛이 멈출 때마다 문득 칠보시가 생각난다
한 발을 내디디면서
내일은 태양이 서쪽에서 뜨리라
그렇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내 목숨을 줄 수 있다고
또 한 발을 디디면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콩잎을 갉아먹는 콩벌레들
이익 앞에서는 의리를 생각하라던
내가 사랑하는 콧수염의 젊은 사내를 생각해 본다
콩밭에 물을 주면서 턱턱 갈라진 흙덩이를 본다
이 시대의 사랑이나 은혜를 보는 듯
위정자들의 갈퀴 같은 손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얼굴을 옆으로 젖히고
알고도 모르는 척 허옇게 웃는 그들의 입술
입술보다 더 두꺼운 갈색 심장이 어른거린다
콩잎 모양 짓누렇게 뜬 흙쟁이들의 육골
굽은 등뼈엔 송진내가 나고
눈엔 진물이 흘러
뿌연 안개 속을 헤매듯 초점을 잃었다
펴진 자는 한없이 죽죽 펴지고
굽은 자는 끝없이 구부러지는 세상
이 콩밭에
내일이면 태양이 서쪽에서 뜨리라
핏빛 목숨 열이라도 주리라
물을 주면서 울음소리
환청으로 듣는다.


 

Copyright(c) 2003 poemsky.com. All rights reserved.
E-Mail :
poemsk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