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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420)
어머니 이제 봄이 왔습니다 산에 들에 바다에 봄꽃이 피고 사람들 마음에도 봄의 바람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우리네 산천에 꽃은 춘서를 기다리고 있고 지금은 벚꽃이 흐드러지고 개나리가 아파트 담장 사이의 공간에 노랗게 피어 머리채를 바람에 날리면서 병아리떼를 손짓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떠한지요? 그곳에서도 지상의 꽃대궐이 동네마다 노래하 듯 피어나고 추억이 어려 저희와 함께 살던 그 옛날을 회상할 수 있는지요? 봄이 오면 양귀비 꽃보다 아름다우셨던 어머니 사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어머니 새 봄이 왔으니 다시 제 영혼 속으로 깊이 다가와 저와 함께 꽃나들이를 갔으면 합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유한하고 소중한 사람이 머물다 떠난 빈 자리는 어쩜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요? 며칠 전에는 제가 무척 싫어하는 어느 시인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시는 무척 잘 쓰고 문명을 드날렸지만 존경을 할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공금을 착복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구덩이에 빠트리고 자신을 위장하고 이중인격의 소유자였는데 제가 쓰레기 통에 버린 사람입니다 꾸고 나서 참 신기했습니다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는 꿈에 아니 나타나고 별 희얀한 일도 다 있네하며 그날 하루 내내 기분이 언짢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머니 제 마음이 이러하니 이제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서 제 손을 꼭 잡아주시고 저를 보고 웃어주세요 청안을 마주하고 고운 미소로 저를 보고 웃어주세요 반석겁이 지나고 또 억겁이 지나도 어머니를 향하는 저의 마음은 또바기 한결 같을 것입니다 어제가 새해였는데 오늘 달력을 보니 벌써 석달이 지났습니다 참으로 유수같은 세월이라고 하더니 돌아보면 그 세월이 그렇게 빠릅니다 어머니 심장시술은 성공하지 못했고 의사는 한 번 더 하자고 하지만 저는 너무 무서워 이제 그만 할려고 합니다 전신마취가 너무 무섭고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냥 약이나 먹고 운동이나 하면서 천수가 다하면 그렇게 받아 드릴려고 합니다 산다는 것도 힘이 들고 죽는다는 것도 힘이 들지만 무저항의 안온이 때로는 평화로울 때가 있고 마음에 안식이 올 때가 있더군요 이러한 마음을 관조라고 하나 봅니다 바둑에도 8단의 품계가 좌조라고 하여 앉아서 마음의 세계를 연다고 합니다 이승과 자승의 다리를 걸어가는 모습 사람의 무게가 사라진 무한의 세계를 넘어가는 무인식의 세계를 저는 관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넘어가면 불생불멸의 영원으로 꿈을 꾸듯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살아서 간직하고 죽어서도 간직하는 것이 제가 이승에 와서 떠나는 그 순간까지 저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간과 구별이 없는 영원으로 넘어가는 무아지경이지요 어머니 주연이가 딸을 낳았다고 귀연이에게서 글이 왔습니다 주연이가 어머니 외손녀이니 외증손녀가 태어났습니다 축하한다고 말은 전했는데 아직 서울에 가지 못했습니다 백일이 되면 그때 저를 부르지 않을까요? 그때 볼까 합니다 주연이를 닮았으면 무척 이쁠 것입니다 요즘은 딸을 낳아야지 아버지가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으면 병원 복도에서 아빠 되는 분이 뉴스에서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은 장가 가면 며느리와 장모에게 빼앗겨서 안개따라 가버린사랑이라고 하고 딸은 그래도 남아서 친정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해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그런 풍속의 흐름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품성과 인격이 있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닐 테지요 새 생명이 태어남은 무척 기쁜 일입니다 방긋이 웃을 때 바라보면 어머니께서 저를 바라보며 웃으실 때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은 이렇게 아름답고 인생의 꾳향기를 가슴에 남게 해 줍니다 이달 말에 저는 엘에이로 돌아 갑니다 다음 주에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하러 갈려고 합니다 강진이랑 같이 가겠습니다 강진이는 새 친구 고권사님을 만나서 자주 식사하고 그 분의 자녀들과도 식사하고 인사하고 같은 교회를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교제하나 봅니다 은비도 고권사님을 만나서 식사를 한 번 했다고 하더군요 남은 인생이 거의 30년인데 혼자 지내기 보다는 그렇게 해서 사로 외로움을 잊고 낚시도 가고 여행도 가고 식사도 하고 아우가 행복하기만 하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 고권사님이 때로는 고맙게 여겨집니다 어머니 이제 이 산천에 봄이 왔으니 청명 곡우도 발 앞에 있습니다 한 번 저에게 다녀가세요 어머니 자리 늘 비워두고 있습니다 부디 어머니 그 순수하신 눈망울 그대로 제게 다가오세요 기도하 듯 이밤 꿈을 비워 놓을게요 어머니 부족한 저를 낳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20년 전 어느 동무가 저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요조숙녀이니 국진이가 훌륭하지 않니? 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날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로 인하여 어머니께서 존경을 받으시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금언입니다 어머니 다음 주에는 어머니께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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